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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통한 작은 정책과 지역 혁신
  • 저자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등록일 2013-12-17

문화를 통한 작은 정책과 지역 혁신



|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동향(trend)


현대에 들어 문화를 소중히 하지 않는 도시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 도시는 ‘문화’를 시정의 목표로 내세우고 있거나, 문화적인 지역개발, 문화적인 지역보전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부 또한 ‘문화도시·문화마을’ 처럼 문화를 매개로 한 지역만들기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역만들기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대체적으로 보아 그 흐름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 번째는 최고급화 된 소비의 공간과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주상복합 빌딩을 만들고 그 아래 첨단의 소비가 이루어지는 아케이드나 상가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 예다. 차단막으로 단절된 내부의 공간은 안정적인 소비와 여가의 공간이 되고, 비슷한 패턴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케이션과 교류를 통해 새로운 일과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낸다. 리차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가 창조도시를 얘기하며, 창조적 계층이 몰려들 수 있는 환경조성을 말할 때, 그리고 그 지역으로 ‘24시간 개방된 지역’을 말할 때 예가되는 공간들은 대부분 이런 종류의 것들이다.


두 번째 유형은 ‘시간의 때’를 갖고 만들어진 공간들이다. 이 유형은 지역적 단위에서 오래된 건축물이 밀집된 지역을 배경으로 여러 유형의 소비와 커뮤니케이션, 교류가 이루어지는 사례를 말한다. 오늘날 북촌과 삼청동, 신사동의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 길 등이 보여주는 특유의 아우라와 소비의 형태가 그것인데, 이들 지역은 오래된 건축물과 휴먼 스케일의 거리를 배경으로, 자그마한 갤러리와 수공업의 샵, 그리고 이를 매개한 여러 종류의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구성된다. 시간의 때를 배경으로, 미학적인 소비를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형태는 ‘미학적인 자원’, 쉽게 말해 예술가들이 밀집된 지역이나 갤러리, 공연장이 밀집된 지역에 형성되는 형태다. 홍대, 대학로, 문래동, 이태원 등으로 대별되는 이러한 지역은 예술을 바탕으로 한 소비를 매개로, 보다 개방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과 교류를 추구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할 수 없는 개방적 형태의 삶과 표현행위, 이벤트들을 끌어들이고 그것을 산업으로서, 일상으로서 배태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도시와 지역을 바꾸는 것이 이들 공간의 특징이다.


현대 도시가 갖는 문화전략은 이보다 더 다양하게 발현된다. 예컨대 성남의 사랑방 클럽처럼, 아마추어 동아리들을 매개로 새로운 문화활동을 유발하는 사례도 있다. 또한 서울시 ‘마을공동체’ 조성 사업처럼, 지역을 매개로 주민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지역을 공동체 공간화 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적 공간으로 조성하는 사례도 있다. 또한 생산과 소비의 공동성이라는 취지하에 도시에서 텃밭을 가꾸고, 공동의 소비를 유발하며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공유문화(sharing culture)도 또 한 축으로 끼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이러한 현실 속에서 문화를 통해 지역을 혁신해나가는 사례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역사(history)


문화를 통한 도시혁신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1970년대 후반, 영국의 수상이었던 마가렛 대처(Margaret H. Thatcher)가 ‘Design or Resign’을 외치며, 영국의 공업도시들을 리모델링했을 때 도시혁신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영국은 성장잠재력을 잃은 제조업과 공장지대를 혁신해야만 새로운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산업으로 ‘문화산업’을 택한다. 그리고 이어 여러 공업도시들을 혁신하는 사업이 착수되었다. 리버플(Liverpool)과 글래스고우(Glasgow), 쉐필드(Sheffield) 등 도시의 공업단지를 문화산업단지로 조성하는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 결과 영국은 1980년대 재성장을 이루며, 대처수상은 ‘대처리즘’이라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공업도시의 문화산업단지화에 성공한 영국은 이어 도시 내부에 있는 낙후지역을 혁신하는 사업에 착수하게 되고, 템즈강변의 노후한 시설인 베터시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추진(1994)함으로써 일약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어 스페인 바스크 정부의 의욕적인 추진 하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빌바오에 건립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프로젝트는 1997년 빛을 보게 되고, 영국의 게이츠 헤드(Gates Head)에 밀레니엄 브리지(2001)와 제분공장을 리모델링한 발틱미술관(2002)이 세워지면서 낡은 시설을 문화적으로 활용하여 지역을 재생하는 모델이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게 되고, 여기에 리차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 찰스 랜드리(Charles Landry), 사사키 마사유끼(Sasaki Masayuki) 등 창조도시 주창자들이 가세하며 문화는 창조를 낳으며 도시를 혁신하는 아이템으로 급부상하기 이른다.


우리 또한 비슷한 시기에 창조도시론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것이 실체를 드러낸 것은 2008년 무렵, 서울시가 ‘창의문화도시론’을 주창하면서부터다. 문래동에 ‘예술공장’(문래예술공장)을 조성하고, ‘서교예술센터’ 등 10여 곳에 이르는 공간에 창작공간을 열면서부터 노후된 시설을 활용한 새로운 도심 지역창조모델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정부가 지역과 문화창조의 틀로서 도심 노후산업이나 시설을 활용한 창조적 지역발굴을 추진하면서 문화를 배경으로 한 지역혁신 사업은 본격적인 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아마도 문화체육관광부, 안전행정부, 산업통상부, 농림부, 지역발전위원회 등 전 부처에서 창의적인 지역혁신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 문화부문의 사업에 있어서도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진화가 이루어진다. 과거에 있어 문화정책의 가장 큰 맥은 ‘예술가’, 즉 창작자에 대한 지원이었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이 논리는 점차 ‘목적성 사업’ 지원, 그리고 창작자가 아닌 국민에게 혜택이 가능 방향으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리가 앞서게 된다. 그 결과 예술을 매개로 한 공공지원 사업이 추진되게 되고, 때 마침 ‘로또기금’이 문예진흥기금 사업비로 들어오면서 지역을 문화적으로 혁신하는 말 그대로 ‘Art in City’ 사업(2006~2007)이 추진된다.


그다지 성과를 보지 못하고 사라진 이 사업은 그러나 2008년 「생활문화공동체 조성사업」과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으로 이어지게 되고, 2009년 「마을미술프로젝트」 등으로 거듭 추진되면서 여러 유형의 지역개발 사업, 예술을 통한 지역혁신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바야흐로 예술을 바탕으로 한 지역혁신, 새로운 유형의 ‘창조적’ 지역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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