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콘텐츠 향유와 창조적 복지
|이 기 현 (한국콘텐츠진흥원 정책연구실장)|
콘텐츠와 행복지수
행복한 사회를 몇 개의 단어로 정의하는 것은 무용한 일일 것이다. 굳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플라톤의 <국가론>이나 토마스 모어(Th. More)의 <유토피아>를 떠올리게 될 것이고, 그 논의의 범위는 광범위해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상향에 대한 꿈은 이어져 오고 있지만, 행복에 대한 합의는 고사하고 대부분 격렬한 논쟁을 촉발할 뿐이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문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곳(no place)’을 의미하며, 그 내용도 이상향에 대한 청사진이라기보다는 16세기 영국사회에 대한 풍자의 색채가 짙다. 이러한 이상주의에 대한 풍자의 전통은 20세기에 들어서도 헉슬리(A. Huxley)의 <멋진 신세계>에 그대로 투영된다. 이처럼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이상향에 대한 동경은 역으로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이나 풍자로 귀결되기 쉽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고려한다면, 행복한 사회에 대한 현재의 관심 역시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논의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행복이라는 지극히 주관적 만족감을 특정 기준을 적용하여 평가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객관화하는 작업들로서 우선 행복지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OECD가 발표하고 있는 ‘Better life Initiative’ 는 웰빙, 건강, 교육, 환경, 개인 안전, 가계 수입을 포함한 삶의 만족도 및 행복한 삶의 영위와 관련된 지표 11개를 조사하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호주가 전체 지표 평가에서 1위, 오스트리아 2위, 벨기에 3위 등의 순이었으며 한국은 일본에 이어 20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국가별로 삶의 행복지수를 평가, 산정하여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 방안 마련의 기초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각 지표의 내용은 여가시간이나, 교육,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 커뮤니티 활동이 포함되어 있어 넓은 의미에서 문화 활동 또는 콘텐츠 이용이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UN에서 발표하는 ‘World Happiness Report’는 2012년 처음으로 발표된 보고서로서 전 세계 각국 정부 정책의 현재를 평가하고 국민의 행복을 영위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에서는 행복도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외적/개인적 웰빙(well-being) 정도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다. 또한,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국가의 공통점으로 ① (사회적 지원제도, 부패 척결, 개인적 자유가 보장된) 부유한 국가, ② 삶의 기본요건 충족, ③ 고용안정, ④ 상호존중 태도, ⑤ 정신적 건강 및 안정 추구, ⑥ 가정과 혼인관계의 안정적 유지, ⑦ 여성의 행복도 향상 ⑧ 중년의 행복도 최하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가장 행복도가 높은 국가들은 대부분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네덜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며 한국은 56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도 정신적 건강과 안정, 집단 경험이나 상호존중의 태도 등은 문화 활동이나 콘텐츠 이용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신경제 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은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인간의 기대수명(life expectancy), 웰빙 경험(experienced wellbeing), 생태학적 연혁(ecological footprint)을 기반으로 HPI(Happy Planet Index)를 개발했다. 위 2개 기구(OECD, UN)의 행복지수 평가에서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결과와는 달리, 이 HPI 지수 평가에서는 남미, 동남아 국가들의 행복도 지수가 오히려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한국은 63위로 저평가되고 있다. 이 지수에서도 문화와 관련되는 웰빙 경험이 중요한 요소로 반영되고 있다.
이와 같은 행복과 관련된 조사에서 나타나듯이, 인간의 행복감이나 행복한 사회를 평가하는 기준이나 요소들은 무수히 많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UN 행복지수처럼 선진복지국가의 시각에서 볼 때와, 영국 NEF처럼 행복도가 산업화 정도와 반비례하는 조사 모두에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것은 이도저도 아닌 중진국의 위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행복지수는 대부분이 기본적인 삶의 영위와 관련된 지표들이지만, 웰빙을 위한 삶의 여건에서 문화와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 활동이나 콘텐츠 이용 역시 우리의 일상적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행복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콘텐츠는 단순한 소비의 대상을 넘어 주관적 경험과 정서적 향유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행복사회의 실현을 위해 문화와 콘텐츠를 어떻게 가꾸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결국 콘텐츠의 가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관된다.
콘텐츠의 가치와 기능
창조사회에서 문화는 인간의 사회적 존재 양식과 광범위하게 관련된다. 창조경제를 위한 콘텐츠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콘텐츠가 지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 때문이다. 콘텐츠는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소통과 복지 등 사회문화적 가치를 동시에 지니며, 삶의 만족도와 같은 주관적·심리적 요소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즉 콘텐츠의 가치는 매우 중층적이며 복합적인 특성을 지니며, 이는 문화의 일반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화적 재화 또는 콘텐츠가 지니는 사회문화적 가치에 대하여 명확히 합의된 개념이나 정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사회학, 언어학, 심리학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문화적 가치의 개념이 보다 확장되었고, 문화에 실로 다양하고 본질적인 가치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졌다. 대상의 아름다움과 조화 등을 통해 인간의 창조성과 감수성을 발달시키는 미학적(aesthetic) 가치,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 종교 등 인간 보편적인 내적 활동이 담긴 정신적(spiritual) 가치, 공동체 의식과 사회 정체성, 연대감 등이 반영된 사회적(social) 가치, 당대의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는 역사적(historic) 가치, 의미를 저장하고 전달하며 타문화 및 타인과의 차이를 확인하는 상징적(symbolic) 가치 등 서로 다른 층위에서 발휘되는 다양한 가치들이 존재한다(Throsby, 2001, 2009). 사회구성원들은 문화를 통해 자신이 속한 시대와 공동체에 적응하는 한편, 공통의 문화를 구성하고 자아정체성을 형성해 간다. 개개인은 문화를 수용하고 해석하며 의미를 재구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잠재력과 능력을 펼치고, 이를 토대로 공동체와의 관계 설정을 통해 문화를 형성, 유지하고 발전시킨다.
이러한 콘텐츠의 사회문화적 가치는 콘텐츠를 단순한 소비가 아닌 향유의 대상으로 이해할 때 더욱 부각된다. 콘텐츠에 다양한 사회문화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곧 콘텐츠가 가치재(merit goods)의 특성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콘텐츠가 가치재라는 것은 그것을 직·간접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얻는 편익으로서의 사용가치나 시장가치로 이해하는 것에 앞서서,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CD 음반이나 영화를 굳이 소장하려 하는 욕구는 바로 콘텐츠가 가치재로서도 인식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좀 더 구체적인 수준에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콘텐츠가 중요한 이유는 콘텐츠가 제공하는 다양한 기능들 때문이다. 우선 콘텐츠의 오락적 기능은 일상 속에서의 즐거움과 감동과 희열을 제공함으로써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정서적 충만감을 고양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즐거움과 만족감 등 정서적 공감을 제공하지 못하는 콘텐츠는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둘째로, 콘텐츠는 그 속성상 실용성을 무시할 수 없다. 콘텐츠의 종류와 서비스 특성에 따라 실용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위치기반 서비스나 증강현실 서비스와 같은 다양한 콘텐츠 서비스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에게 어떤 실용적 도움을 주느냐가 성패의 관건이 된다. 마지막으로 콘텐츠의 공익적 기능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이다. 콘텐츠가 단순한 상품이나 경제적 재화가 아니라, 보편적 다수 국민들의 일상적 삶의 내용과 질의 문제와 직접 연결된다는 점에서 공익성은 중요하다. 콘텐츠 향유의 개념이나 콘텐츠 접근성, 콘텐츠 리터러시의 문제들은 모두 콘텐츠의 공익성과 관련되는 사항들이다.
이러한 콘텐츠의 사회문화적 가치는 콘텐츠를 단순한 소비가 아닌 향유의 대상으로 이해할 때 더욱 부각된다. 콘텐츠에 다양한 사회문화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곧 콘텐츠가 가치재(merit goods)의 특성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콘텐츠가 가치재라는 것은 그것을 직·간접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얻는 편익으로서 사용가치나 시장가치로 이해하는 것에 앞서서,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CD 음반이나 영화를 굳이 소장하려 하는 욕구는 바로 콘텐츠가 가치재로서도 인식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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