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창조산업과 콘텐츠의 ‘행복한 동행’을 위하여
|유 승 호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
박근혜 정부 5년의 닻이 올랐다. 신정부는 창조경제를 국정목표로 삼았다. 이 분야의 전문가나 학자들에게 창조경제란 새삼스러운 말이 아니다. 우리에게 ‘낡은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염원하는 ‘창조’라는 말만큼 가슴 뛰는 말은 없다. 신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경제가 창조로 꿈틀대며 날아오르기를 기대해본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 녹녹치 않다는 것이다.
혁신의 대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작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의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리해고 당한 다음 미국에서는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탄생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식당들만 늘어났다. 내가 한국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유다.” 한국에서 해외봉사를 한 경험이 있는 그는 한국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한국의 미래에 강펀치를 날렸다.
미국만이 강펀치를 날린 게 아니다. 모바일폰 시장에서 기세등등하던 노키아가 스마트폰 전쟁에서 대패하고 쓰러져갈 때 우리는 이제 핀란드는 맥없이 무너졌구나 생각했다. 노키아를 무너뜨린 것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 기업이었다는 것에서 더욱 신났다. 그런데 노키아의 만여 명의 해고자들은 식당 창업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그들은 수백 개의 벤처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 한방 강펀치를 날렸다. 앵그리버드로 대표되는 핀란드의 벤처들은 노키아의 해고자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스마트폰게임 앵그리버드의 로비오사 한 곳만 이미 6천명을 넘게 고용하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가 헌 일자리를 대체했을 뿐만 아니라 일자리의 질도 젊은이들에게 맞게 좋아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직 후, 퇴직 후 왜 벤처가 아니고 ‘요식업’으로 뛰어들까. 요식업이 산업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요식업에 너무 많은 사람이 뛰어든다는 것이다. 서비스산업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나 <지식집약형 서비스>가 아니라 <식음료형 대인서비스>라면 국가경쟁력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런데 우린 왜 ‘벤처’로 달려가지 않고 ‘식당’으로 달려갈까.
주변의 퇴직자들에게 물었다. 왜 벤처보다는 식당인가요? 그런데 식당도 그냥 식당이 아니고 프랜차이즈 식당이어야 한단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마케팅 능력도 없어서 스스로 작은 식당을 내는 것이 겁난다고 한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하면 재료도 다 가져다주고, 요리방법도 알려주고 마일리지카드 등 마케팅도 대행해준다. 대기업에 대항해 이길 자신이 없으니 대기업 네트워크가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식당을 생각해보면 이렇다. 우리는 대기업의 프랜차이즈보다, 최고급 레스토랑의 식사보다, 집에서 따뜻하게 먹는 밥이 더 맛있을 때가 훨씬 많지 않은가? 그런데 왜 우리는 작으면 모두 잘 안 될거라 생각할까. 그것은 지식이 집약되어 엄청난 경쟁력을 가진 대기업 앞에서 나의 작은 지식이 쉽게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대기업은 그런 지식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규모의 경제를 백분 활용하여 원재료와 식자재관리부터 제휴마케팅, 마일리지마케팅, 데이터마이닝까지 엄청난 지식력을 축적했다. 퇴직해서 작은 식당하나 골목에 차려보는 사람이 이들 거대한 기업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보다는 그 바위 밑에서 계란을 파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창조산업의 산업적 소명
우리의 문제는 여기서 비롯되며, 창조산업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조산업은 어머니의 손맛과 같다. 작음에도 불구하고, 작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나에게 딱 맞으며 그래서 더 편안하고 마음에 드는 것이다. 작은 것에도 지식은 움틀 수 있으며 때로는 오히려 작아서 싹트기에 더 좋다.
이제 거꾸로 한번 생각해보자. 퇴직한 식당이 아니고, 벤처를 세운다. 내가 5천만원의 퇴직금으로 벤처를 하기 위해 젊은 친구 2-3명을 고용한다고 해보자. 비록 나는 관리기술정도만 있지 특별한 기술은 없지만 1년간의 교육으로 기술벤처를 경영하고 운영하는 방법을 알았다. 1년간의 창업교육 후 개발아이템으로 교육용 앱을 개발하기로 하고 암기용 단어장 앱을 개발하기로 했다. 기술개발 능력이 있는 젊은 친구들 2-3명을 고용할 수 있다. 나는 마케팅이나 회사운영 등을 담당하고 젊은 동료들이 기술개발을 하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걱정한다. 능력 있는 젊은 개발자들을 어떻게 구할 것이며 판로는 있을 것인가 걱정한다. 작은 회사니 곧 망할 것이고 남는 것 하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벤처보다는 인테리어가 멋진 프랜차이즈가 겉보기에 안정적이고 얼마간의 수익도 있을 것같이 괜하게 이 일을 시작했다고 후회한다.
그래서 여기에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국가에서 벤처에 돈을 투자할 수 있도록 많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퇴직한 사람이 기술벤처 창업을 하겠다고 용기 있게 나서면 국가가 긴밀히 개입하여 컨설팅하고 투자와 인력을 매칭하여 매출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물론 벤처도 망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전체의 투자자금이 식당과 부동산에 쏠리고 인테리어산업에 투자되어도 요식업의 90% 가까이는 3년 내에 폐업한다. 국민경제가 ‘식당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는 과잉확신에 빠져있는 것이다. 가진 지식이 없어도 커피전문점으로 큰 돈을 번 사람들을 영웅으로 만든 미디어의 편견일 뿐이다. 투자는 위험하지만 그것은 이제 어디에서나 위험하다. 세계적인 정치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했듯, 위험은 민주화(democratization)되었다. 공유된 위험 속에서도 투자가 벤처로 몰리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창조산업이 산업적 소명이며, 국가가 나서서 창조산업을 육성해야 할 이유다.
각 나라별로 창조산업의 모델은 다르지만 창조산업을 강조하는 맥락은 비슷하다. 각 분야의 ‘파괴적 혁신’이 지속가능하길 원하는 것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위해, 그리고 경제성장을 위해 창조성이 꼭 필요한데, 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그것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것은 곧 사람들의 행복과도 직결된다. 행복해야 열심히 일하면서도 녹초가 되는 일 없이 오래간다. 일에 애정을 갖게 되고 삶의 동기가 풍부해지면서 가정의 부, 직장의 부, 지역의 부, 국가의 부가 지속적으로 달성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창조산업은 녹초가 되지 않고 사람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동인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창조산업은 바로 이러한 공급자 위주의 경제에서 소상공인, 직장인, 장인, 소비자 같은 수요자, 체험자 위주로의 경제 전환을 뜻한다.
창조산업의 일자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자리 늘리기는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여야 한다. 좋은 일자리란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다. 식당이어도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시키는 그대로만 잘하면 되는 일이라면, 그런 직장은 국가경제에 별 보탬이 되지 못한다. 내가 그 일에 만족하지 못해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경쟁력은 지식에서 비롯된다. 비록 비정규직이라 해도 지식이 필요하고 지식을 집약해서 무언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비정규직은 비록 회사는 옮겨 다녀 직장안정성은 떨어질 지 모르지만 직업안정성은 아주 높다. 그래서 일자리에서도 창조를 강조한다. ‘창조적’이란 작은 것이어도 지식이 집약되어 내가 스스로 발전함을 느끼고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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